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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ced 2026-04-14 00:04:07 +09:00
a
This commit is contained in:
@@ -4,24 +4,20 @@ date: 2023-10-23T09:45:50.000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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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operating-mirroring-ser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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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링 서버는 21년 말에 학교에서 우분투를 설치하다 너무 오래걸려서 만든거였는데, 그게 어느새 서버 업그레이드도 몇번 거치고 다른 것들도 추가하고 하니까 사이즈가 많이 커졌다. 작년까지는 에러도 자주나고 그랬는데 이제야 안정적으로 운용할 정도의 수준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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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링 서버는 원래 21년 말에 학교에서 우분투를 설치하다 너무 오래걸려서 만든거였는데, 그게 어느새 서버 업그레이드도 몇번 거치고 다른 것들도 추가하고 하니까 사이즈가 많이 커졌다. 작년까지는 에러도 자주나고 그랬는데 이제야 안정적으로 운용할 정도의 수준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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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링하는 스크립트는 옛날 단순하게 적었던걸 그대로 쓰고 있다. path도 지정 못하고 하드코딩 투성이라 새로 짜야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래서 최근에 아에 다시 만들었다. 근데 이게 미러링 사이즈가 18TiB정도 되니까 이걸 테스트 해보기가 겁나더라.. 게다가 라이브로 뭔가 꼬여버리면 여기저기서 큰일이 나니까 Consistency가 중요한 바람에 테스트도 못하고 그냥 방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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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링하는 스크립트는 옛날 단순하게 적었던걸 그대로 쓰고 있다. path도 지정 못하고 하드코딩 투성이라 새로 짜야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래서 최근에 아에 다시 만들었다. 근데 이게 미러링 사이즈가 18TiB정도 되니까 이걸 테스트 해보기가 겁나서.. 게다가 라이브로 뭔가 꼬여버리면 여기저기서 큰일이 나니까 Consistency가 중요한 바람에 테스트도 못하고 그냥 방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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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링 하는 서버가 NFS로 마운트하는 방식이라 비슷하게 다른 서버에서 Overlay로 설정해서 테스트를 해보기는 했다. 그때는 딱히 큰 문제가 없었지만 나중에 실제 돌릴때 혹여나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문제가 생기면 많이 골치아파진다. 지금 쓰고 있는 스크립트는 1년 넘게 달 돌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단순히 YAML로 된 Config를 읽어서 Rsync로 동기화 한 뒤에 Index만 업데이트하면 되는 스크립트라 복잡한건 없는데, 여기저기 예상치 못한 곳에 에러가 나는 바람에 에러 핸들링에 꽤 애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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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거 만지면서 꽤 많은걸 배웠다. 물론 서버 만지면서 리눅스는 뭐.. 그렇고 (애초에 노트북이 리눅스라..) 쉘스크립트랑 템플릿팅이랑 웹 사이트 정적 디자인도 몇몇개 알게 되었고,, 특히 뭐랄까 개발 외적으로 책임감?도 약간은 느끼게 된듯 하다.. 내 서버가 잠깐 문제생기면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지고 수습하는것도 꽤 힘드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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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오늘 Kali 리눅스 공식 미러에 추가되었다. 일주일쯤 전에 트친분께서 Kali 미러가 너무 느리다고 하셔서 확인 해봤는데, 한국에 없어서 대만이랑 일본에서 가져오는거 아니던가.. 한국 인터넷이 바다 건너면 속도가 1/4토막이 나는 바람에 심각하게 느리겠다 싶었다. 그래서 Kali 미러링 공식 문서를 읽어 봤는데, 다른 미러는 보통 4시간에 한번 이렇게 시간으로 동기화를 하는데 요거는 SSH Pushing을 쓰는 것이었다. 동기화가 필요할 때 (메인 미러가 업데이트 되고 나서) SSH로 각 서버에 신호를 보내 동기화를 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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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Kali 리눅스를 새로 미러링하기로 했다. 일주일쯤 전에 어떤 분께서 Kali 미러가 너무 느리다고 하셔서 확인 해봤는데, 한국에 없어서 대만이랑 일본에서 가져오는거 아니던가.. 한국 인터넷이 바다 건너면 속도가 1/4토막이 나는 바람에 심각하게 느리겠다 싶었다. 그래서 Kali 미러링 공식 문서를 읽어 봤는데, 다른 미러는 보통 4시간에 한번 이렇게 시간으로 동기화를 하는데 요거는 SSH Pushing을 쓰는 것이었다. 동기화가 필요할 때 (메인 미러가 업데이트 되고 나서) SSH로 각 서버에 신호를 보내 동기화를 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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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H를 Kali 서버로만 열고, Authorized Keys 파일에 Public Key와 "command="를 입력해 두면 그 키로 인증한 클라이언트는 정해진 "command="가 실행된 환경만이 주어진다. 물론 Kali에서 제공한 스크립트도 다 오픈되어 있는 스크립트이고, 나도 한번 확인해본 스크립트지만 여튼 SSH를 타인에게 연다는 게 약간 걱정이 되었다. 아무래도 서버 권한을 남에게 주는거니까 혹여나 그쪽 PrivKey가 유출이 되거나 하면 문제가 되니까 찜찜하기는 했는데, 뭐 별 수 없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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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H를 Kali 서버로만 열고, Authorized Keys 파일에 Public Key와 "command=" 를 입력해 두면 그 키로 인증한 클라이언트는 정해진 "command="가 실행된 환경만이 주어진다. 물론 Kali에서 제공한 스크립트도 다 알려진 스크립트이고, 나도 한번 확인해본 스크립트지만 여튼 SSH를 타인에게 연다는 게 약간 걱정이 되었다. 아무래도 서버 권한을 남에게 주는거니까 찜찜하기는 했는데, 뭐 별 수 없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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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그쪽에서 도메인이 아니라 IP로 고정해둬야 하는 방식이듯 해 Dynamic IP는 안된다고 했는데, 이거는 VPS에 연결해서 SSH Shim 비슷하게 설정하는걸로 해결했다. VPS IP는 고정이니까 그 서버를 거쳐서 내 로컬 서버로 들어오게 설정해놨다. 이렇게 하는 바람에 이제 VPS가 Dependency로 남아버렸다. 내가 서버를 아마 앞으로 평생 해놓을 것 같으니 저 IP도 평생 달에 5불씩 내면서 유지를 해야한다. 이것 이외에는 값싸게 고정 퍼블릭 IP를 받을 방법이 없다. 데이터센터는 트래픽이 너무 비싸고, 트래픽이 싸더라도 로컬 NFS를 써야하니까 실제 서빙 대역폭의 두배가 필요하다. 계산해 보니 달에 평균적으로 14-15TiB정도 쓰는데, 이거 VPS에서는 한 5-60불이라 부담이 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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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그쪽에서 도메인이 아니라 IP로 고정해둬야 하는 방식이듯 해 Dynamic IP는 안된다고 했는데, 이거는 VPS에 연결해서 SSH Shim 비슷하게 설정하는걸로 해결했다. VPS IP는 고정이니까 그 서버를 거쳐서 내 로컬 서버로 들어오게 설정해놨다. 이렇게 하는 바람에 이제 VPS가 Dependency로 남아버렸다. 내가 서버를 아마 앞으로 평생 해놓을 것 같으니 저 IP도 평생 달에 5불씩 내면서 유지를 해야한다. 이것 이외에는 값싸게 고정 퍼블릭 IP를 받을 방법이 없다. 데이터센터는 트래픽이 너무 비싸고, 트래픽이 싸더라도 로컬 NFS를 써야하니까 실제 서빙 대역폭의 두배가 필요하다. 계산해 보니 달에 평균적으로 14-15TiB정도 쓰는데, 이거 VPS에서는 한 5-60 USD 라 부담이 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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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바운드 트래픽이 14-15TiB나 되니 ISP에 헤비업로더로 등록?된듯 하다. 아무래도 가정용 회선을 써야 하니까 ISP의 제한을 조금 받는데, 가끔 DHCP도 안주고 레이턴시도 늘어지고 해서 짜증이 난다. 근데 어차피 아웃바운드는 한 80%가 국내니까 어차피 ISP 내부 망 안일텐데, 이러면 왜 굳이 제한을 하는건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국내 ISP는 국내에서라도 QoS를 없애야 하지 않나 싶다. 150GiB는 요즘같은 시대에 너무 적은 용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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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바운드 트래픽이 14-15TiB나 되니 ISP에 헤비 업로더로 등록된것 같다. 아무래도 가정용 회선을 써야 하니까 ISP의 제한을 조금 받는데, 가끔 DHCP도 안주고 레이턴시도 늘어지고 해서 짜증이 난다. 근데 어차피 아웃바운드는 한 80%가 국내에다 우리나라 회선 80%는 KT일거니까 어차피 ISP 내부 망 안 일건데, 이러면 왜 굳이 제한을 하는건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국내 트래픽은 QoS라도 없애야 하지 않나 싶다. 150GiB는 요즘같은 시대에 너무 적은 용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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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쓰지는 않아서 왜 굳이 아무도 안쓰는 서버를 계속 켜놓을까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 들어 몸집도 커지고 트래픽도 팍팍 올라가니 할 맛이 난다. 특히 외부에 있는 다른 머신에서 (학교에 설치되어 있는 우분투라던지) 내 서버가 보이면 정말 기쁘다. 처음에는 커뮤니티를 위해서 하는거 보다는, 취미로 하는 부분이 컸는데, 지금은 커뮤니티에 조금이나마 보탠다는 생각이 좀 강해졌다. 물론 아직도 내 유일한 취미는 서버 운용과 오픈소스 기여다. 요새 프로그램을 만드는거에 노하우도 생기고 해서 꽤 완성도 있는 결과물도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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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은 해보고 싶은 거는.. 러스트를 배우는거다.. 뭐랄까 내 머리는 C에 테일러되어 있어서 말이지, 러스트의 엄격함에 원초적인 거부감이 든다. 항상 C의 자유도를 바탕으로 꼼수를 쓰는 방식을 꽤 애용해서 그런지 마음대로 못하는 러스트는 별로다.. 그래도 C의 Proceeder기도 하고, 또 메모리 보호는 필요불가결한 부분이니까 적응해 나가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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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미러는 있는데 왜 우리 학교는 미러를 안하지.. 동아리방 가보니까 안쓰는 서버 있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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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쓰지는 않아서 왜 굳이 아무도 안쓰는 서버를 계속 켜놓을까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 들어 몸집도 커지고 트래픽도 팍팍 올라가니 할 맛이 난다. 특히 외부에 있는 다른 머신에서 (학교에 설치되어 있는 우분투라던지) 내 서버가 보이기도 해서... 처음에는 커뮤니티를 위해서 하는거 보다는, 취미로 하는 부분이 컸는데, 지금은 커뮤니티에 조금이나마 보탠다는 생각이 좀 강해졌다. 물론 아직도 내 유일한 취미는 서버 운용과 오픈소스 기여라서... 요새 프로그램을 만드는거에 노하우도 생기고 해서 꽤 완성도 있는 결과물도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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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 +7,8 @@ It's been like a year since I dumped my blog. Mostly because of my terrible w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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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k, I've hit weekly limit on Claude so I have nowhere to dump my ideas this week, so I thought about finally write some blog post about what I do these days. In reverse temporal manner. (My memory is getting worse day by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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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ng to mac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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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e been using Linux as my main OS for 6 years now, and before that.. well I never owned my own mach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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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12 +28,12 @@ In worse case if I was going to hate macOS, I can just RDP to my Linux too. gn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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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n I got busy and bla bla,,, and t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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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announced Macbook Neo. For 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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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yway, I own Macbook Neo now, been using it for like 2 weeks now, it's wonderful. I experienced if I can live with 8GB before, using `mem=8G`, and it was more than enough for me. And with that, it's the best laptop afterall. I surely don't need full performance (since I do my computation things on my server any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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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yway, I own Macbook Neo now, been using it for like 2 weeks now, it's wonderful. I experienced before if I can live with 8 GiB using `mem=8G` and it was more than enough for me. And with that, it's the best laptop after all. I surely don't need full performance (since I do my computation things on my server any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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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I mean... I'm writing this article on my Linux laptop still, it's not like I use it exclusively but like.... polyamory I gu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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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nux f*ck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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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a average Linux user, I have (had) a bunch of workflow for my everyday Linux usage. (yes, you need workflow for using everyday OS if you're using Lin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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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4 +44,29 @@ And also I wanted to have macOS-like screentime on Linux too, there's screen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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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bunch of things, like FreeRDP HiDPI problem caused some problem while I was traveling and tried to RDP to my laptop, so I had to patch (sdl-)freerdp to do HiDPI proper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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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even though this "problems" can be 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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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even though this "problems" can be seen as the fundamental problems of Linux, the fact that we do can fix it is very different from if we can't even fix it my ourselves, and needing to just wait helplessly for Microsoft or Apple to fix it eventu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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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also means if you don't do fixes, no one 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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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D Pr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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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3D printer now. Yay! It's Bambu A1 and so far so good I think. It's good that I can print anyway I want to make, but I can't do 3d design so I'm just using Tinkercad for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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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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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ticking second in class makes me want to just leave everything behind and start 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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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should've go what I wanted to do, what other said me to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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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at I was doing all thes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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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onestly don't know. I don't play game, I don't go out and play, In my memory I was always doing something, searching something, learning something, making something. But if I recall, I can't remember what I exactly done all thes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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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999-04-14T15:55:00.000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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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선택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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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만 해도 나는 무조건 컴퓨터 공학과나 전기전자 공학과. 학과만 보고 대학교에 진학하리라 마음먹었었다. 진짜 학교 이름은 절대 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입시에 처하고 선택의 갈림길에 있으니 그 다짐은 물거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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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원서 접수 기간이 되니 진로 담당 선생님은 실적을 위해 상위 대학교의 낮은 학과에 원서를 넣어볼 것을 추천하셨다. 말이 추천이지 반 강제로 넣게 되었다.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3년동안 생각도 없었는데다 자기소개서도 짜맞춰야 쓸 수 있는 학과에 지원했다. 붙어도 안간다는 생각으로. 하지만 내가 희망했던 대학을 떨어지고, 상위 학교 하위 학과와 하위 학교 자유 학과중에 선택해야 했다. 내가 3년동안 해왔던 것과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생각해 본다면 당연히 학과를 보고 진학을 해야 했었는데, 막상 상위 학교의 합격증을 받으니 당연히 마음 한켠에서는 이걸 버린다고?!?라는 마음이 있었고, 그 마음에 휘둘려 등록예치금을 보낸다. 아직 등록 기간이 남았으니 등록 취소를 해도 되겠지만, 사실상 마음을 다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등록금 환불 신청서까지 적어놓고 책상에 올려두었다. 도장과 보호자 서명까지 받아놓고 고민했다. 후회하지 않을까? 어느 쪽으로 가나 조금 다니고 후회하게 될텐데, 학교를 후회하는게 학과를 후회하는 것보다 더 심하지 않을까 생각해 결국 그대로 원서는 놔둔 채 날이 넘어간다. 날짜가 넘어가는 걸 보고 얼마나 힘이 풀렸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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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선택을 한 후 몇일간은 대학교 이름에 심취해 우리 학과도 선녀처럼 보였다. 전망 좋은 공과 학과로만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심취해 있던 생각이 풀리기 시작했고, 학과의 현실을 마주하기 시작하면서 후회가 밀려왔다. 서양에서는 주로 취급하지도 않는 사양산업의 책임으로만 끌고 온 이름만 대학인 학과. 이게 우리 조선해양 공학과의 현실이었고, 미래였다. 미래도 없는 학과. 이런 학과인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실제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더욱이 실감났다. 왜 이런 학교에 와서 이딴 옛날 정보를 배워야 하는가. 왜 교수님은 열등감에 산업을 과장하고 잘 될거라고 세뇌하고 애원하듯이 수업을 하실까. 그 정도로 사양산업의 학과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탈출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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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탈출을 결심하게 될 줄은 알았다. 반수를 하던, 유학을 결심하던, 군대를 가던 어떻게든 이런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게 될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학교도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엄청 막 좋은 곳은 마냥 아니었다. 역사가 오래되어 뿌리깊은 명문이지만 보수적 교육과 보수적 관념 그 자체인 학교인 듯 했다. 대학교 수업은 고등학교의 주입식 교육 그 연장선 뿐이었다. 많은 것에 너무 큰 상실감을 느꼈다. 학과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래서 결국 대한민국 교육의 한계인가 싶었다. 대학교도 같은 처지의 교육이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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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학과에 대한 열등감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학과’때문에 학교도 그렇게 느껴진다면 그만큼 그 학과에 문제가 크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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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유학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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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교육을 벗어나고 싶다. 아직 기초를 공부하는 입장으로서 얼만큼의 주입식인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것이 대학원까지 이어지고 심지어 그 이상에도 이어지는 교육 체계와 대학 교수들 아래에서 배우고 싶지 않다. 난 이루고 싶은 꿈과 하고 싶은 일, 애타게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 지금까지 내가 노력할 수 있었던 사명감이라 할 수도 있다. 이것이 깨져버린 이상, 그리고 여기서 계속 공부를 이어나가는 이상 내 꿈은 영원히 짓밟힐 것이다. 지금 여기에는 어떤 수를 써도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길은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는 회피라 할테지만, 난 여기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후회하면서 이뿐인 자리에 있느니, 차라리 이 현실을 회피해 새 길을 열어나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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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중요한 것은 이것이 지금 하기 싫은 일에 대한 회피가 목적이 되어 버리면 안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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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999-12-01T17:09:00.000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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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대학 입시가 한단계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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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시가 한단계만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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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자 발표와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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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공부하고 대비해야하는 시험은 다 끝났으니 마음껏 놀고 있지만 마음의 한편에는 아직 불안함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또 공부와 시험대비라는 정해져 있는 계획만을 12년 동안 따르던 나에게서 갑자기 계획이나 강제성이 사라졌다. 이제부터는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나 혼자서 알아서 결정해야 하고 또한 그 책임도 내가 져야할 것이다. 예를 들어 늦게자도 누군가 깨워주지 않는다는 것에서 그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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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고싶은 것도 없다. 무언가 해야하는 것도 딱히 없다. 그래서 그게 더 스트레스다. 운동을 해야할 걸 알고 운동을 하고싶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영어공부를 해야하는 것을 알지만 막상 하려니 하기 싫다. 운전면허는 학원을 다니므로 예외. 남겨놓은 책도 읽어야 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모두 핑곗거리 뿐이지만 나에게는 하지 않을 충분한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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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짐을 고쳐잡아야 한다. 미련하고 기계이기만 했던 지난 학생 시절을 벗어나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어른, 하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러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다짐을 했다. 내일부터는 사람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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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짐은 물론 다음날 아침에 깨졌다. 늦게 깨어난 것은 물론 일어나자 마자 의욕을 잃었다. 아직 나는 사람이 될 마음가짐이 안되었구나. 옛날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더다짐에 대한 마음가짐과 독기가 풀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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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무거운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이제 앞으로의 계획을 정하든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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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첫번째로 운전면허. 이번주 주말부터 시작해 매일 1시에 수업이 있다고 들었다. 1차 필기시험을 통과할 수 있도록 집중해서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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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로 운동. 입시하던 도중에 항상 입시 끝나면 다이어트 하고 헬스를 해서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보자! 마인드였는데 지금은 헬스는 개뿔 먹고 자고 눕기만 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 뻘짓으로 2시간이나 걸어다녔으니 운동의 초석을 다진것이라 보고 내일부터 or 담주부터 헬스를 끊어야 겠다. PT를 끊던가 하면 식단도 조절되고 그걸 따르는 건 할 수 있으니까 해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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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영어. TOEFL. 토익말고 토플이 나에게는 익숙하다. 토플 주니어를 거의 매년 치다시피 했고 중딩때 IBT를 여러번 쳤으니 토플이 제일 익숙할 것이다. 일단 나는 기본 영어 감은 충분하고 넘치다고 자부하고 있..으니(???) 문법이나 문제푸는 요령같은 것들을 인강을 듣고 문제집을 풀고 해서 꾸준히 영어공부를 해야겠다. 뭐 많이는 못하더라고 꾸준히는 할 수 있잖아? 할 것도 없는데.. 일단 교재부터 알아보고 (뭐 해커스가 되겠지만) 인강도 알아보고 해서 책을 빨리 구입하던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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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자산. 돈관리. 원래 내 통장은 어머니가 관리하셨다. 금액이 *만 가까이 되니 내가 건들기 힘든 금액이기도 했고, 세금때문에 마음대로 건들면 안된다고 했다. 하지만 만 17세가 되면서 내가 내 금융을 관리할 수 있게 되었고 그때 카뱅이나 씨티같은 계좌를 몰래 만들어 놨다. (나중에 씨티는 해지하느라 애를 엄청 먹었지만) 뭐 지금은 다 알지만.. 내가 쓰는 계좌는 카뱅, 토뱅 두개이다. 어머니가 만들어 놓으신 계좌는 농협에 여러개인데 나도 잘 모른다. 근데 내가 그 고액 저축통장을 찔끔찔끔 빼서 써서 약간 일이 커지게 될 것 같이 되어버리긴 했다. 그리고 문제는 내 경제관념이다. 어디다 빼먹고 왔다. 고3 주제에 한달 사용액이 50만원 가까이 된다. 이건 진짜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장정리 하고 어머니께 잔소리 좀 들으며 자산관리에 대해서알아가야 겠다. 국가장학금도 있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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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뭐 독서려나. 사놓고 안읽은 책이 90%이다.권수로 치면 대강 40권이고 금액으로 치면 대충 100만원 정도이네..? 빨리 읽어야 한다. 대학가기 전에 30권 이상 읽는게 목표이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기술서는 빼고 읽으면 그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 나는 독서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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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자기계발! 프로그래밍 공부, 컴퓨터 공부!? 파이썬은 많이 했고 C++도 기초는공부했다. 이제 두꺼운 C++책과 TAoCP, EMC++, 하드웨어 보안, 전기전자 등등 이런 책들 가지고 공부해야 겠다! 재밌겠구만!! 이런거 좋아함.. 요즘에는 코테도 많이 보는 듯 하니 알고리즘 공부도 해놓고 내가 좋아하는 보안 공부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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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인간관계 청산. 이게 좀 많이 필요할 것 같다. 일단 고등학교 3년을 100명이랑 보내서 안 친할래야 안 친할 수 없다. 그 중 도움이 될것 같은 친구가 있고 아닌 친구도 있지만 나는 현생에 충실하지 않았으면서도 충실했어서 대강 다들하고 이어져 있다. 이 상태 유지만 하면 좋을 것 같다. 내 주요 인간관계는 모 SNS의 분들과 몇몇 친구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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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이걸 바탕으로 계획을 짜보자! 애들 공부하는 VLOG도 보면서 '나도 그랬었지' 와 '그랬었으니 지금도 가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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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팅! 이제 끝이고, 이제 진정으로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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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999-12-22T01:23:00.000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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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고등학교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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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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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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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2월 22일이다. 12월달에는 열심히 살아야지 하던게 어제같은데 벌써 새해가 다가온다. 나는 내년 성인이 되지만, 아직 실감이 안난다. 술담배를 할 수 있는 나이라기 보다는 내 행동에 내가 책임져야 하는 때가 되었다는 게 더 실감이 난다. 대학을 고민하며 내가 앞으로 뭘 하면서 먹고 살아야할지 꽤 오랫동안 고심했는데, 그 결과로 조금 성장한 것 같아 이제와서는 약간 기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면서 슬픈 약간 오묘한 기분이다. 어찌되었든 이제 성인이 되니까 조금 변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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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을 돌아보면 2020년을 돌아봐야 하고, 그러면 당연히 2019년이 생각난다. 여튼 고등학교 3년 생활이었기에 항상 쌍으로 돌아다녀야지. 고등학교 생활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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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고등학교 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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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영재교육원을 다니면서 내 미래가 결정되다 싶이 했다. 이렇게 계속 하다보면 동네 중학교에 진학하여, 과학고를 준비하고, 과학고에 진학하여 과기원을 가는게 정해져있었던것 같다. 그때는 지금 이렇게 될지는 몰랐겠지만, 그 길을 모범적으로 걸어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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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연말, 나는 과학고 입시를 봤다.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학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과 새벽 3시까지 남아 첨삭을 했던 기억이 있다. 불 꺼진 건물에서 술래잡기를 하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돌아보면 즐거워서는 안되었것 같지만 중학생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쯤에는 학원에 12시까지 남아서 서류준비를 하고는 했는데, 이때 항상 데리러 와주셨던 아버지께 정말 감사하다고 이제와서 생각한다.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면서 매 주말마다 학원에 갔고, 내가 숙제를 안해서 학원에 늦게 남아야 했던 적도 많은데, 그럴때마다 항상 아무말 없이 데려다 주셨다. 영재원도 다녔기에 먼 거리를 항상 운전해 주셨다. 2주마다 창원에서 진주까지 가고, 거기서 4시간을 기다려주시고, 집에 데려다 주셨다. 이제와서 생각하니 정말 너무 감사하다는 말 밖에 안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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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를 통과하고, 면접을 준비해야 했다. 나는 말을 잘 못했다. 정확히는 너무 긴장을 하는 타입이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시끄럽고 잘 놀았는데, 면접은 너무 긴장되었다. 그래서인지 준비하는데도 애를 먹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되었다. 뭐 통과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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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시험은 너무 못봤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면접을 보고 와서 공부를 했을 정도이다. 아무래도 고등학교를 간다는 낮선 감정과 못봤다는 불안감이 교차해서 잠깐 철이 들었나보다. 하지만 뭐 합격을 했고, 합격 페이지를 봤을 때 그 희열은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합격을 했어서, 나는 의욕이 붙었었다. 과고 대비반, 과고를 들어가기 전 방학때 잠깐 하는 총정리 수업을 정말 열심히 했었다. 아마 그정도로 열정을 가지고 공부했던 적은 거의 없던것 같다. 고등학교때는 열정이 아니라 강박에 의해서 공부를 했으니… 그때 물리와 수학, 화학을 한번 쭉 배웠는데, 수학은 둘째치고 그때 배웠던 화학 지식은 고등학교 3년동안 우려먹었고, 그때 배웠던 물리 덕분에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정말 재미있었고, 원리가 신기했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그때 새로운걸 배운다는 느낌을 다시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여튼 방학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덕분에 1학년때에는 최상위권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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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학하는, 과학고는 기숙사 학교였다. 이때 처음으로 집을 떠나 멀리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말 정말 무서웠다. 들뜬 감정도 있었지만, 중3 그 어린 나이에 집을 나온다는 건 아무래도 많이 불안했던 것 같다. 과학고는 브릿지라고, 입학 전에 2주간 두번 학교에서 미리 생활하면서 기숙사 생활과 고등학교 일상에 미리 익숙해지고, 미리미리 여러가지 시험을 치면서 각종 반을 결정하는 기간을 가진다. 2월 초 처음으로 브릿지를 가면 기숙사 방을 배정받고 생애 처음으로 룸메이트를 배정받았다. 생판 모르는 친구랑 같은 방에서 자고 생활해야 하는 거였는데, 나는 새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는 편이라 약간 두려웠다. 물론 말만 한번 트면 급속도로 친밀감을 좁히는 스타일인데, 그 처음 말을 트는게 힘들었다. 하지만 착한 친구였고, 덕분에 2주동안 여러 친구도 사귀고 잘 지냈다. 기억나는건, 우리 방에 귀신이 나오기로 알려진 괴담이 있는 방이었는데, 무서워서 몇일은 못잤던 기억이 있다. 기숙사 생활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첫날 빼고는 바로 익숙해졌다. 아침 6시 20분에 일어나는 것과 점호, 그리고 공동 샤워실에서 씻는것이 정말 낮설었지만 성격상 금방 적응했다. 너무 적응해서 문제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장을 한바퀴 도는 구보를 하고 기숙사로 돌아와 씻는 시간을 가진다. 이후 아침 자습을 하는데, 이때 시험을 쳤다. 진단고사라고, 아마 자신의 위치를 확인해보라고 시행했던 시험이었던 것 같다. 아침에 머리를 굴리는건 낮설었고, 그때에는 그게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 같아 최선을 다해서 쳤다. 물론 두번째 브릿지에서는 잔다고 치지도 못했지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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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을 하고 정식으로 학생이 되었다. 방학때 공부했던 기세로 1학기는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아마 고등학교 때중에서 최고로 집중했던 시기이다. 덕분에 뭐 점수는 잘 받았고, 원하던 영재학급도 들어갈 수 있었지만 원하던 동아리는 떨어졌다. 시험이 처음보는 개념들 투성이었고, 부산이나 서울에까지 가서 공부했던 친구들과 싸움은 힘들었다. 이때 한계를 첨으로 느꼈다.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고등학교 생활의 전환점이 찾아온다. 한 친구를 알게 된다. 중3때 나는 덕후.. 였다. 1학기때에는 공부하느라 바빠서 다른거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지만 처음으로 방학을 맞이하면서 여유가 생겼고, 자유시간이 많이지면서 약간은 문화생활을 즐기게 되었다. 이때 내 내면에 있던 잠재력이 부활을 했고, 그때 같이 덕후인 한 친구를 만나게 된다. 나랑 너무 잘 맞았다. 성격도 잘 맞았고, 관심사도 잘 맞았던 그 친구와 나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러다 우리는 연애를 한다. 그것도 중간고사 5일전에 사귀기 시작했다. 당연히 공부는 하지 않았고, 연애에 몰두하느라 2학기는 통으로 날리게 된다. 하루종일 놀고, 문자하고, 편지쓰고 그랬다. 단 둘이 있기 좋은 시골학교라 산책도 자주 갔고, 정말 행복했다.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 그래도 중위권은 유지했는데, 부모님은 당연히 당황하셨을 것이다. 갑자기 그렇게 성적이 떨어졌으니.. 그래서 결국 부모님과 틈만 나면 싸웠고, 그 친구와도 정말 자주 싸웠다. 지금와서 내가 왜그랬을까 싶다. 정말 좋은 친구였고 정말 잘 맞았는데, 내가 너무 잘못했던것 같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알게 되는건가 싶다. 그 친구와는 몇번에 다툼 이후로 영영 멀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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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공부를 놓으니 그 뒤로 공부하기 어려웠고 낮아진 성적은 높이기 힘들었다. 그렇게 나는 2학년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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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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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나는 2학년이 된다. 1학년 친구들이 새롭게 들어오며 2학년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나마 공부를 해서, 성적을 높이는 데에는 성공했다. 2학년 1학기를 잘 쳐서, 조기진학이 가능한 성적이 되었다. IQ도 140을 넘겨서 조기졸업도 가능했다. 2학년 여름방학때는 고민을 한다. 조기졸업을 할지 조기진학을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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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2학년에 올라가는 시기에 코로나를 맞이한다. 전 수업이 온라인 수업이 되었고, 입학식뿐만 아니라 진급식, 그리고 그 사이 수업도 전체 다 온라인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온라인으로 진행하면서 장비를 셋팅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침에 수업을 제대로 들을리 없었기 때문에 캡쳐보드며 다른 여러 장비도 장만했다. 그러면서 오디오 문제가 생겼다. 에어팟은 녹음을 하면서 동시에 재생할 때 통화로 연결이 되어 음질이 정말 너무 구리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오디오 장치를 따로 썼고, 캡처보드에 오디오를 넣기 위해 가상 오디오 드라이버까지 찾아가며 준비했다. 그러면서 오디오 드라이버에 관심을 가졌고, 그러면서 컴퓨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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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걸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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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을 한번 떨어진 경험이 있다. 과학고등학교 재학생 중 중상위권이었던 나는 조기진학의 기회를 받았고, KAIST만을 넣은 채로 떨어졌다. 그 때는 붙을 줄 알고 있어서 2학년 2학기 시험을 말아먹었고, 지금도 그 영향을 받아 피를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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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그 이후 각성을 한건지 철이 든건지 3학년 1학기는 최상위권 성적을 받아 원래대로 유지는 할 수 있었다. 3-4등 정도 했으니까 망정이지 태도를 안고치고 그대로 했더라면 나는 그대로 멘탈이 없어져버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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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3번 대학별 지원동기를 쓰면서 계속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고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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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항상 하던 생각. 무엇을 공부하던지 간에 항상 들었던 생각. 내가 무엇을 하던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존재하구나. 특별한 존재가 되기에는 나는 너무나 작구나. 자신감이 점점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내가 돋보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것들을 공부하자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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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구잡이로 공부했다. 필요할 때에만 공부했고, 원하는 것만 공부했다. 그래서 그걸 공부라고 해도 될 지 모르겠다. 일단 내 기억에서는 공부가 아니다. 나는 컴퓨터 공부를 취미정도로만 생각했지 공부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뭔가 컴퓨터를 공부하면 죄책감이 들고 공부한 것 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재미있게 한 덕분에 지식은 방대해 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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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GA에 대해 공부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공부였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공부가 아니라 딴짓으로 박혀있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을 알 수 있고 재미있게 할 수 있었지만 자세히 알고 집중해서 했다고는 못한다. FPGA를 공부했지만, 알고는 있지만 공부했다고는 할 수 없어서 결국 안한거나 마찬가지인 것이 되어버렸다. 이미 한번 공부한 내용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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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자소서를 쓸 때 고민이 되었다. 주위 친구들은 다들 수과학 내용을 위주로 썼는데, 나는 온통 다 반도체, 컴퓨터 연구 공부했던 내용, 나한테는 딴짓했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나한테는 논 것을 써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물론 쓰고 나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꽤 볼만한 자소서가 되어있었지만, 처음부터 써내려갈때에는 많이 괴롭고 고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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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컴퓨터 공부는 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정말 재미있고, 내 적성에 100% 맞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앞으로는 컴퓨터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 그것은 고등학생 신분으로는 내 맘속에서 딴짓이라고 정의되어 버리므로, 일단은 대학을 가야 하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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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항상 내 꿈을 말할 때 표현의 부족함을 느꼈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꿈보다 훨씬 이루고 싶고, 인생을 움직이는 원동력과도 비슷한 거니까. 물론 꿈을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그게 꿈 아니야? 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꿈보다 훨씬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 컴퓨터라는 기계의 역사에 내 이름을 크게 남기는 것. 내가 생각했을 때는 꿈보다는 야망에 훨씬 가까운 내용이었다. 나는 컴퓨터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싶다. 어쩌면 *Linus Torvalds*처럼, 혹은 벨 연구소와 IBM 연구소의 많은 사람들 처럼. 내 이름을 직접적을 남기지 않아도 내 작품이 두고두고 무언가의 기반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작품을 컴퓨터 역사에 깊이 뿌리박히게 하는 것. 그게 내 야망이자 꿈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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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컴퓨터를 잘 알아야 할테지.. 컴퓨터라는 기계를 역사부터 원리까지 꿰뚫고 있어야 하겠지. 그것을 위한 여정은 매우 길고 또 험난하겠지. 하지만 운이 좋았다. 나는 그 과정이 정말로 재밌다. 놀지 말고 쉬지 말라고 해도 할 수 있다. 그게 내가 그것을 딴짓이라고 생각한 원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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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정말 강한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컴퓨터 공부를 놀이라고 생각했던 것. 하지만 앞으로는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슬금슬금 한계가 다가오고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으니까. 지금으로써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마음을 잊지 않는 것. 꾸준히 생각하는 것. 기반 지식을 열심히 쌓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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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학교 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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