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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 2022-04-14T06:55:25Z description = "" draft = false slug = "2022041406" title = "선택실패" +++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만 해도 나는 무조건 컴퓨터 공학과나 전기전자 공학과. 학과만 보고 대학교에 진학하리라 마음먹었었다. 진짜 학교 이름은 절대 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입시에 처하고 선택의 갈림길에 있으니 그 다짐은 물거품이 되었다.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원서 접수 기간이 되니 진로 담당 선생님은 실적을 위해 상위 대학교의 낮은 학과에 원서를 넣어볼 것을 추천하셨다. 말이 추천이지 반 강제로 넣게 되었다.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3년동안 생각도 없었는데다 자기소개서도 짜맞춰야 쓸 수 있는 학과에 지원했다. 붙어도 안간다는 생각으로. 하지만 내가 희망했던 대학을 떨어지고, 상위 학교 하위 학과와 하위 학교 자유 학과중에 선택해야 했다. 내가 3년동안 해왔던 것과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생각해 본다면 당연히 학과를 보고 진학을 해야 했었는데, 막상 상위 학교의 합격증을 받으니 당연히 마음 한켠에서는 이걸 버린다고?!?라는 마음이 있었고, 그 마음에 휘둘려 등록예치금을 보낸다. 아직 등록 기간이 남았으니 등록 취소를 해도 되겠지만, 사실상 마음을 다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등록금 환불 신청서까지 적어놓고 책상에 올려두었다. 도장과 보호자 서명까지 받아놓고 고민했다. 후회하지 않을까? 어느 쪽으로 가나 조금 다니고 후회하게 될텐데, 학교를 후회하는게 학과를 후회하는 것보다 더 심하지 않을까 생각해 결국 그대로 원서는 놔둔 채 날이 넘어간다. 날짜가 넘어가는 걸 보고 얼마나 힘이 풀렸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구나.
그런 선택을 한 후 몇일간은 대학교 이름에 심취해 우리 학과도 선녀처럼 보였다. 전망 좋은 공과 학과로만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심취해 있던 생각이 풀리기 시작했고, 학과의 현실을 마주하기 시작하면서 후회가 밀려왔다. 서양에서는 주로 취급하지도 않는 사양산업의 책임으로만 끌고 온 이름만 대학인 학과. 이게 우리 조선해양 공학과의 현실이었고, 미래였다. 미래도 없는 학과. 이런 학과인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실제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더욱이 실감났다. 왜 이런 학교에 와서 이딴 옛날 정보를 배워야 하는가. 왜 교수님은 열등감에 산업을 과장하고 잘 될거라고 세뇌하고 애원하듯이 수업을 하실까. 그 정도로 사양산업의 학과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탈출을 결심했다.
결국 탈출을 결심하게 될 줄은 알았다. 반수를 하던, 유학을 결심하던, 군대를 가던 어떻게든 이런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게 될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학교도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엄청 막 좋은 곳은 마냥 아니었다. 역사가 오래되어 뿌리깊은 명문이지만 보수적 교육과 보수적 관념 그 자체인 학교인 듯 했다. 대학교 수업은 고등학교의 주입식 교육 그 연장선 뿐이었다. 많은 것에 너무 큰 상실감을 느꼈다. 학과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래서 결국 대한민국 교육의 한계인가 싶었다. 대학교도 같은 처지의 교육이구나 했다.
지금 학과에 대한 열등감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학과’때문에 학교도 그렇게 느껴진다면 그만큼 그 학과에 문제가 크다는 것이 아닐까?
난 유학을 결심했다.
대한민국의 교육을 벗어나고 싶다. 아직 기초를 공부하는 입장으로서 얼만큼의 주입식인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것이 대학원까지 이어지고 심지어 그 이상에도 이어지는 교육 체계와 대학 교수들 아래에서 배우고 싶지 않다. 난 이루고 싶은 꿈과 하고 싶은 일, 애타게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 지금까지 내가 노력할 수 있었던 사명감이라 할 수도 있다. 이것이 깨져버린 이상, 그리고 여기서 계속 공부를 이어나가는 이상 내 꿈은 영원히 짓밟힐 것이다. 지금 여기에는 어떤 수를 써도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길은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는 회피라 할테지만, 난 여기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후회하면서 이뿐인 자리에 있느니, 차라리 이 현실을 회피해 새 길을 열어나가련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것이 지금 하기 싫은 일에 대한 회피가 목적이 되어 버리면 안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