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content/posts/2022-04-09-dareun-jibe-eon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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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다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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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창원이다. 어렸을 때 서울에 살다가 초증학교때 창원으로 내려왔고, 중학교 3학년까지 거기서 살아왔다. 고등학교는 기숙사 학교를 가서, 어쨋든 학창시절은 창원에서 지냈다.
대학을 서울로 와서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등학교때 기숙사는 들어오자마자 화장실과 샤워실을 리모델링 하기도 했고, 전국에서 아마 가장 넓은 방을 가지고 있었지 않을까 싶다. 각 방마다 냉장고도 있고. 하지만 대학교 기숙사는 참담했다. 2/3로 줄어든 엄청 좁은 방에, 낮은 천장, 허술한 난방, 게다가 못 쓸정도로 더러운 화장실과 때와 곰팡이로 가득한 샤워실까지. 고등학교때와는 차원을 달리할 정도로 극악의 기숙사였다. 그래서 그런지, 공용 공간의 위생을 병적으로 집착하는 나에게는 너무 스트레스였다. 여기저기 남이 쓰던 쓰레기나 껌같은 흔적들이 방 곳곳에 있었고, 애초에 너무 더러웠다. 그래서 결국 기숙사에일주일을 못 버티고도망쳐 나왔다. 그렇게 조부모님 댁에 얹혀 살기 시작했고, 1시간의 통학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통학을 했을 때에는 학교를 가기만 하는게 너무 힘들었고, 어떻게 이렇게 힘들게 학교를다니지라는 걱정만 있었지만, 막상 한달째 통학을 하고 나니 일상 운동도 되고 기숙사와는 달리 정신을 빠릿빠릿하게 세우고 생활을 하게되는 장점도 많았다. 특히 강제적으로라도 기상시간이 앞당겨진다는 것은 일상의 더 빠른 시작을 일으켜 가장 강점이 되었다. 강권의 약속과 술약에서 수월히 빠져나올 수 있는 구실이 된다는 것은 덤.
원래의 집에서 생활하는 여타 통학과는 달리 나는 조부모님 댁에서 생활을 하니 삶의 제한이 꽤 자유롭다. 통금 시간도 없고, 부모님의 잔소리도 없어(솔직히 이건 필요하다.) 기숙사의 자유도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만큼의 자유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생활도 최대한 배려하고 눈치를 많이 보면서 살아야 한다는 의무가 따른다.
내가 가장 질색하는 몇가지가 있다. 강박에 가까워 고치기 정말 힘든데다 관련된 사소한 것에도 진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첫번째는 먼지. 두번째는 음식, 마지막은 간섭. 바닥에 먼지가 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발은 항상 깨끗해야 한다. 침대에서 거꾸로 누울때도 걱정없이 잘 수 있을 정도로 발은 청결해야 한다. 하지만 조부모님댁(이하 본가)은 연립주택인데다, 도심에 있어 먼지가 많이 쌓인다. 게다가 청소를 잘 안하신다. 발에 계속 뭔가 달라붙고 먼지가 쌓이고 그것으로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는데, 내가 청소를 하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난 청소를 좋아한다.
두번째는 음식. 나는 비만이다. 비만이지만 먹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많이 먹지도 못한다. 하지만 강박이 있어 밥을 남기지를 못한다. 죽을 것 같아도 밀어 넣는다. 그런 강박이 있다. 그래서 평소에는 음식 냄새를 맡으면 토가 쏠린다. 그런것은 문을 닫으면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본가의 세탁기는 부엌을 지나 베란다에 있다. 빨래를 해주시고 말리시는 과정에서 음식에 대해서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첫번째 항목에와 마찬가지로 음식 먼지, 즉 고춧가루 소금이나 음식에 관련된 사소한 찌꺼기들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빨래를 가져오시는 과정에서 음식 먼지가 많이 붙는다. 이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감이 안온다. 런드리고라고 빨래 대행까지 생각했는데, 도리가 아닌것 같아서 포기했다. 뭔가를 요구하기에는 얹혀 사는 입장이라 너무 불편하다.
마지막으로 간섭. 이거는 누구나 마찬가지이겠다. 내 방은 아무도 청소하지 않았으면 한다. 사생활 그런 문제는 아니고 그냥 '있던 그대로'라는 강박 때문이다. 물건이 나도 모르는 새에 위피가 바뀌어 있으면 사소한 것에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성격상의 결점이라 부탁드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조부모님은 진짜 어려운 관계인 것 같다. 부모님보다는 거리감이 있지만 그 외에서는 가장 가까운 관계이다. 조부모님과 나의 관계는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남이지만 사실 가장 친밀한 가족의 소중한 가족이다. 편해진다면 얼마든지 편해질 수 있지만 불편해지면 얼마든지 불편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불편하고 그렇게 생각해도, 항상 고맙습니다.